갑작스러운 호출, 이제 춘추복을 입어야 하는 계절의 오후 7시는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 불만 없이 옷을 골라입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상대가 레이나였기 때문일까. 만나기로 한 장소는 축제때에도 올라갔던 그 산. 그 때의 무거운 짐 대신에 마음의 무게를 지고 올라야 했기에 쿠미코는 운동화 대신에 굽 있는 샌들을 골라 신었고, 약속한 곳에...
“Trick or Treat!" “뭐야 그거.” 부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 온 에리를 반기는 건, 흘긋 쳐다보고는 다시 읽던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마키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른 학년 교실 돌아보러 갔어.” 여전히 무심히 대답하는 마키와 힘이 빠져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에리. “그런데 마키는 안 끼는 거야? 핼러윈인데?” “어린 아이도 ...
렘리나의 아침은 평소보다 분주했다. 지구에 강하한 이후로 매일 업었다시피 한 긴 소매의 무채색 옷과 얼굴을 모두 가릴 정도의 긴 천 대신에,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흰 원피스에 검은 볼레로를 챙겨 입는다. 대체 얼마만에 입어보는 단정한 의상인가 하는 감상을 늘어놓을 여유 따위는, 이제 곧 도착한다는 방문자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있을 수 없었다. 카이즈카 이나...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말로 갑자기 니코 쪽에서 프렌치프라이를 씹다 말고 말을 걸어왔다. 그 기습에 마키는 놀라는 것도 없이, 트레이 위에 포장지를 벗긴 채 놓아 둔 햄버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하는 고민 때문에 건성으로 ‘응’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굳이 사귄다고 스킨십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아?” “음. 그렇......지 않지!” 니코의 말을 해석하는 ...
어쩌다보니 고등학교 후배의 병원과 가까운, 치요다구의 중심지의 맨션. 잠자리와 작업공간의 구분이 없는 원룸. 방의 어디에 있더라도 눈에 들어오도록 공간의 가운데,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침대. 그리고 침대 주인이 거슬리지 않도록 조금 거리를 두고 놓인 책상. 토죠 노조미가 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고 지금의 방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건 반년 전. ...
마키시마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마키시마의 디자이너로서의 데뷔를 알리는 첫 단독 패션쇼. 다른 모델들은 진작에 도착했지만, 대미를 장식한 모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바보를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처음부터 이 옷을 입을 사람은 전 세계에 딱 이 사람뿐이라는 생각으로 진작부터 섭외 아닌 섭외를 했고, 승낙도 흔쾌히 받아내었다.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오...
“러브레터는 전혀 줄지 않았네요.” “응? 무슨 이야기?” 점심시간의 옥상, 평소라면 μ‘s가 연습을 할 시간이었지만 모두의 배려 아닌 배려를 받아 이제는 우미와 에리의 점심 식사 장소가 되었다. 발단은 우미의 고민 상담. 동성으로부터의 러브레터 때문에 고민이라는 우미의 얘기에 에리가 장난삼아 한 말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만약, 나랑 우미가 서로 좋아...
지리멸렬한 정부군과 반란군 사이의 전투는 이제 막바지라는 것을 아야세 에리 소장은 몇 시간 전의 보고를 통해 깨달았다. 마지막까지 반란군이 점거하고 있던 공관에 대한 소탕작전이 끝나간다고 휘하 부대의 지휘관이 알려 온 것이다. 그에 대한 공적의 치하도 없이 에리는 그래, 직접 가도록 하지, 라고 간단히 끝맺었다. 그리고는 옷장 안에 두고 있었던 제일 깨끗한...
“다녀왔데이-” 현관을 들어서며 일부러 큰 소리로 귀가를 알린다. 그 인사에 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노조미는 개의치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래서 신발도 대충 벗어두고, 잠겨있는 방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다. “내 왔데이- 얌전히 잘 있었나?” 검은 커텐으로 창문을 가려둔 방, 노조미가 닫다가 만 방문 틈으로 들어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의 식당. 작은 방의 커튼을 제쳤을 때 마주친 에리의 얼굴과 표정. 이미 몇 잔 들이켰는지 발갛게 달아오른 에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것을 보았다. “어? 우미? 여긴 어떻게 왔어?” 기억 속의 목소리보다 조금 높아진 톤, 그리고 앉으라고 반쯤 일어나 손을 안으로 흔드는 모습에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건 아닌 것 같아 내심 안도...
소노다 우미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늘도 그렇게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해 왔던 수련에 발바닥도 허리도 손목도 애저녁에 길들여졌기에 이른 새벽의 검도도, 늦은 저녁의 무용도 이제와서는 자극조차 될 수 없었다. 소노다 도장. 이제는 무술도 겸하게 된 도장의 딸로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내야 하는 그런 것이었으며, 여기에 불만이나 불평은 없었다....
오늘은 꽤나 이상한 날이었다. 아침에는 늦잠을 자 버려서 지각을 하고, 수업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을 받고, 스마트폰의 배터리도 하루가 다 가도록 절반도 쓰지 못했다. 이상해, 평소와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다고 마키시마 유스케는 생각했다. 새벽 내내 울리는 라인 알람도 없었고, 점심시간에 날아오는 뜬금없는 수면 선언도 없었고, 시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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