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좀 어렵네~” 둘 밖에 남지 않은 스튜디오 안에서, 기타의 울림에 리사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미안, 사요. 연습중이었는데 이상한 소리 내서.” 끊겨버린 선율에 리사가 사과해버린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마침 잘 안되던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요의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사요도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저도 사람이니...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반기지 않을 걸 알면서도 히카와 사요는 습관적인 귀가 인사를 한숨과 함께 뱉어냈다. 오늘 연습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연습에 집중하라는 유키나의 말,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한 리사,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아코, 갈팡질팡하는 게 눈에 띄는 린코까지. 집중하지 못 할 연습에는 가치가 없다고 지금까지 말해오던 사요였...
“좋아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교사 구석에 있는 사육실 안. 방과 후 교실을 나서는 아리사를 한 마디도 없이 타에가 손을 끌어 온 곳이었다. “토끼는 말야, 손이 많이 가는 동물이야.” “그래?” 뭘 하자고 끌고왔나 했더니 타에는 단순히 동물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꺼내더니, 자재실에서 너까래나 빗자루나 하는 도구들...
시라사기 치사토는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다. 무대 위의 마루야마 아야는 어떻게 보일까. 곁눈이 아난 두 눈으로 바로 보는 모든 것은. 수없이 연습실 거울 너머로 보았지만 그건 의상도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광경, 스테이지에서 보는 건 멀찍이서 바라보는 옆모습. 아야가 정말로 빛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인터넷 여기저기서 아야의...
‘언니, 나 크면 언니랑 결혼할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요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방에서 눈을 떴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 제멋대로 놓은 가구들, 아무데나 널부러져 있는 소품들, 그리고 벽에 걸린 파스텔 톤의 기타까지, 안정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방이었지만, 사요는 가끔 잠이 들지 않을 때면 주인 없는 이 방에 와서 잠을 청하고는 했다. 손을 대는...
CiRCLE의 연습실을 울리던 격렬한 소리가 사라져간다. 한데 어울리던 타음도 전자음도 목소리도, 공간에 남아있던 소리조차 모두 가라앉고 찾아온 정적. 그 안에서 모두는, 정 가운데에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았어. 더 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해.”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표정, 차가운 목소리. 그런데도- “얏호! 해냈...
오늘의 학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소란스러웠다. 또래의 소녀가 모여있는 곳이라면 흔히 나오는 주제는 그대로였지만, 오늘따라 연예 가십이 더욱 자주 들려왔다. 유명 황색지의 특종 예고 때문이었을까? 하네오카 여학원은 특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 마음껏 떠들고 있었다. 최근에 뜨기 시작한 밴드의 기타리스트. 예고는 단 한줄, 그리고 선글라스와 비니를 뒤집어 ...
평소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았던 부실에 토죠 노조미는 혼자 남아있었다. 수업이 끝난 직후까지도 어제와, 또 그제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미안! 선약이 있는 걸 잊어버렸어!” 라며 학생회장, 아야세 에리가 깊이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하는 일만 없었어도. “마 어쩔 수 없구마. 그라믄 다음에 보자.” 거짓말.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에리가 안타까워 마...
언제부터였을까. 쌍둥이인 둘 사이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을 때는. 소학교 몇 학년까지 같이 학교를 가고 같이 집으로 돌아갔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중학교 3학년의 거의 마지막, 히나와 다른 고등학교로 갈라지는 게 결정된 날 정도일까? 그 날의 표정이나 환희와도 같았던 안도감은 지금에 와서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히나...
“에리!” 머리를 울릴 만큼의 큰 목소리와 벽에 부딪히는 문 소리에 노조미는 귀를 막고는 그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니콧치! 에리치 죽겠대이!” 니코에게 지지 않을 크기로 소리 지르는 노조미. “둘 다, 너무 소란스러운 거 아니니?” 침대 끝에 베개를 대고 등을 기댄 에리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보며 진정시키듯 나직히 말했다. “캐도!...
미치미야 유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 속에 있었다. 작년 봄까지 걸었던 길가의 익숙함, 세세한 부분이 달라진 가게의 낯설음.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손으로 넘기는 자신의 긴 머리, 그리고 처음 보는 모습으로 굳어 있는 사와무라 다이치. 대 혼돈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시간동안의 기억들이 취기와 섞여 맴돌고 있었다. 시작은 무엇이었...
“다녀왔습니다.” 지쳐서인지 아니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인지 에리는 작은 목소리로 귀가 인사를 한다. 현관에 오르면 바로 보이는 주방. 가스레인지 위에는 뚜껑이 덮인 냄비가 하나, 그리고 개수대 옆 좁은 공간 위에는 랩으로 씌인 접시가 몇 개. 설거지거리는 니코답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로 보이는 거실에는 하얀 형광등 불빛과 TV에서 나오는 색이 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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